최근 시민단체들이 통조림에서 ´비스페놀A(BPA)´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화학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비스페놀-A(Bisphenol-A, BPA)는 주로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나 에폭시수지(epoxy)의 원료로 유아용 젖병·생수병·식품 및 통조림 내벽의 금속재질 부식 방지를 위한 코팅제 원료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지난 19일 시민단체 모임인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은 "초등학교 급식 식자재에 이용되는 통조림 29개를 구입해 분석한 결과 25개 식품에서 BP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국민행동은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급식자재에는 BPA 코팅이 된 통조림 캔을 쓰지 말 것을 권고했다. 또 어린이 급식용으로 제공되는 통조림 캔에 ´BPA로부터 안전´하다는 등 인증제 및 경고 문구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통조림 캔(용기)에 대해 BPA 용출기준을 0.6ppm 이하로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며 "시민단체가 조사한 급식용 통조림 식품 중 BPA 검출량은 0.0041~0.281ppm 수준으로 국내 기준에 적합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럼에도 불구 BPA 제조업체 등 화학기업들은 호르몬교란물질을 만든다는 이미지 악화와 더불어 관련사업 타격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26일 BPA 제조기업 관계자는 "내용일일섭취량(TDI)에 훨씬 못 미치는 안전 수준으로 안심하고 통조림 사용해도 무방하다"며 "그동안 유럽 규제를 넘어서는 기준을 준수했는데도 극미량이 검출됐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통조림에서 검출된 비스페놀A, 위험한가?
2008년 EU의 위해성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비스페놀A의 소비자 경구 노출량은 하루 0.0003~0.01mg/kg이다. 미국 화학물질 노출기준(하루 5mg/kg)는 실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노출될 수 있는 BPA 양의 최대 1만6천700배에 달한다.

이는 동물실험 결과를 인체 상황으로 가정할 때 50kg의 여성이 매일 2.5g씩 BPA를 먹거나 마셔야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용일일섭취량(TDI) 기준은 각국마다 약간 다르나 미국·유럽·일본의 성인 평균(60kg) 기준은 3000㎍/kg 이다. 이번에 통조림 15종에서 검출된 비스페놀A 양은 6~60㎍/kg이며, 가장 많이 검출된 2종은 141㎍/kg, 169㎍/kg으로 TDI 범위 내에 있다.

현재 국내 법적 규제현황은 기구·용기 포장의 기준 및 규격이 있고, BPA 일일섭취량은 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학계·산업계 및 관련 정부가 함께 국민의 건강과 BPA에 대한 과잉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식품 내 BPA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병무 한국독성학회 회장(성균관대 약대 교수)은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으로 알려져 있는 BPA의 경우 동물에서는 정상적인 호르몬 작용을 방해해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인체에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한다는 충분히 입증할 만한 연구결과나 자료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BPA에 대해 가장 선진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 BPA 일일섭취허용량은 25µg/kg, 즉 사람 체중 1kg당 25µg으로 정하고 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BPA가 해로운 물질이라 하더라도 사람 체중 1kg당 25µg을 초과하지 않으면 인체에 안전하다는 것. 즉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통조림 식품을 섭취해도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덧붙였다.
 

▲비스페놀A, 호르몬교란물질 논쟁 진행형
"BPA를 호르몬 분비 교란물질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BPA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산성물질이나 높은 온도를 만나면 BPA가 녹아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BPA를 ´환경호르몬 추정 물질´로 본다. 근거는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

우리나라도 플라스틱을 만들 때 넣을 수 있는 BPA의 양을 규정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 등에서 유아용 젖병에는 BPA를 쓸 수 없도록 규제하기 시작했다. 우리 식약청도 내년부터 BPA 함유 젖병의 제조·수입·판매를 제한할 방침이다. 이는 영유아가 성인보다 화학물질 노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식약청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지난 7월 비스페놀A(Bisphenol-A, BPA)가 성조숙증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 유발과는 상관성이 낮다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다.

안전평가원에 따르면, 성조숙증 여아(140명)의 혈중 비스페놀A와 디에칠핵실프탈레이트(DEHP) 농도는 평균 4.2ng/㎖과 179.4ng/㎖인데 비해 대조군 여아(70명)의 혈중 농도는 각각 평균 5.7ng/㎖과 220.1ng/㎖로 차이가 없었다.

또한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아(40명)의 혈중 비스페놀 A와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PBDEs) 농도는 평균 2.9ng/㎖과 16.8ng/g인데 비해 대조군(20명)의 혈중 농도는 각각 평균 4.2ng/㎖과 22.8ng/g으로 차이가 없었다.

안전평가원 관계자는 "이번 연구로 비스페놀A가 성숙증과 갑산성과 유발과는 상관성이 낮은 것으로 연구됐지만, 여성 에스트로겐 활성을 갖고 있어 기준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며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문 기자 (moon@ebn.co.kr) l 2011-12-26 11:21:10